은행은 왜 고인의 통장을 잠그는 걸까요?

장례비를 정산해야 하는데, 급한 대로 아버지 통장에서 돈을 좀 찾아 쓰면 되지 않을까 — 이런 생각, 한 번쯤 스치셨을 겁니다. 카드를 들고 ATM 앞에 섰다가, 혹은 은행 창구에서 순서를 기다리다가, “출금이 제한되었습니다”라는 말을 듣고서야 상황을 실감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기서 걸음을 멈추고 하나만 여쭤보고 싶습니다. “혹시 이미 카드나 통장으로 돈을 조금 찾으셨나요?” 만약 그렇다면, 지금부터 드리는 이야기를 조금 더 주의 깊게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왜 하필 지금, 계좌가 잠기는 걸까요

사망신고를 하거나 안심상속 원스톱서비스를 신청하면, 그 정보가 금융기관에 전달되면서 일반적으로 고인 명의의 계좌는 출금이 제한됩니다. 다만 실제 반영 시점은 은행별 업무 절차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안심상속 원스톱서비스에 대해서는 지난 글에서 자세히 다뤘습니다.)

이건 유족을 곤란하게 하려는 조치가 아닙니다. 예금은 고인이 남긴 상속재산이고, 법적으로는 상속이 개시되는 순간 상속인 전원에게 각자의 법정상속분만큼 나뉘어 귀속됩니다. 그런데 상속인 중 누군가 먼저, 혼자 인출해버리면 나머지 상속인들과의 분쟁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은행이 계좌를 잠그는 건, 바로 이런 다툼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사망신고 전에 몰래 인출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 부분은 조심스럽지만, 명확히 짚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사망신고 전에 고인 명의로 된 출금 청구서를 작성해서 돈을 찾으면, 사안에 따라 사문서위조나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카드나 계좌 비밀번호로 ATM에서 인출하는 경우도 컴퓨터 이용 사기죄에 해당할 여지가 있습니다. 모든 경우에 곧바로 이런 처벌로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가족끼리 상의 없이 급한 마음에 벌어지는 일이라도 법적으로는 이렇게 다뤄질 수 있다는 걸 알아두시면 좋습니다.

사망신고 이후라면 상속인 전원의 동의를 받아 정식 절차로 인출하는 게 원칙입니다. “형제들과 아직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는데, 그럼 아예 손을 댈 수 없는 걸까요?” 네, 정식 절차 전에는 그렇습니다. 급하게 장례비가 필요하시다면, 상조회사나 장례식장에 직접 결제하시거나, 상속인 중 한 분이 우선 대납하고 나중에 정산하시는 방법을 권해드립니다.

정당하게 인출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요

상속인 전원의 동의를 받아 인출하거나 계좌를 해지하려면, 보통 다음 서류가 필요합니다.

  • 상속인 전원이 서명·날인한 상속 예금 신청서
  • 상속인 전원의 신분증과 인감증명서
  • 고인의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 (은행 방문이 어려운 상속인이 있다면) 그 상속인의 인감이 날인된 위임장

은행마다 요구하는 서류가 조금씩 다를 수 있어, 방문 전 해당 지점에 전화로 확인하시면 헛걸음을 줄일 수 있습니다.

만약 상속인 중 한 명이 동의하지 않거나 연락이 닿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런 경우 은행은 대체로 지급을 거절합니다. 이럴 때는 법원에 예금 반환 청구 소송을 통해 본인의 법정상속분만큼 받아낼 수 있는데, 이 부분은 상속포기·한정승인이라는 더 큰 주제와 함께 다음 장에서 다루겠습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 ☐ 사망신고 전에는 고인 명의로 임의 인출하지 않기
  • ☐ 급한 장례비는 직접 결제하거나 상속인 중 한 명이 대납 후 정산
  • ☐ 상속인 전원 동의서·인감증명서·가족관계증명서 준비
  • ☐ 은행 방문 전 필요서류 전화로 재확인
  • ☐ 동의가 어려우면 법률 상담 고려

자주 묻는 질문

실제로 가장 많이 여쭤보시는 질문입니다. 장례비처럼 명백히 정당한 목적이라도, 사망신고 전 임의 인출은 법적으로는 여전히 위험 소지가 있습니다. 다만 실무에서는 장례비 용도의 소액 인출을 상속인들이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도 가장 안전한 방법은 상조회사·장례식장에 직접 결제하거나, 인출 전 다른 상속인들에게 미리 알리고 동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공동명의 계좌는 별도 규정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아, 단독명의 계좌와 처리 방식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해당 은행에 개별 확인이 필요합니다.

위임장과 인감증명서(또는 재외공관 확인서류)로 대체 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은행에 미리 문의하시는 걸 권합니다.

오늘은 이것만 기억해 두세요

지금 당장 통장의 돈을 찾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장례비는 다른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있고, 상속인 간의 동의는 서두른다고 빨리 되는 일이 아닙니다.

계좌가 잠기면 당황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절차가 상속인 모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장치라는 걸 알아두시면, 조금은 마음이 놓이실 겁니다. 통장이 잠긴 며칠, 그 시간은 가족이 서두르지 않고 이야기를 나눌 여유이기도 합니다.


이 글은 2026년 기준 민법 및 금융권 실무 안내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은행별로 요구 서류와 처리 방식이 다를 수 있으니, 정확한 사항은 해당 금융기관에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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